상담후기
"아들과 함께 간다는 것"
1. 돌이켜 보니, 하나뿐인 아이는 언제나 멋진 사람이었다.
2. 아빠는, 어린아들을 껴안고 뒹굴며 놀아주었다고 했지만,
외동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이터로 데려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3. 엄마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 빠져 아이를 돌볼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절망적인 경제상황에 갇혀, 아빠에 대한 깊은 원망과 불만으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15년간 계속되었는데, 게다가 아이는
아빠와 무척 닮아 있어서, 간혹 남편에 대한 깊은 불만은 아이에게
이유없는 불벼락으로 내려졌고 아이는 억울한 마음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4. 아이는 10살이 되도록 불안하고 억울한 상황을 수시로 맞으며,
엄마의 눈치를 보며 컸다.
5. 아이는 늦게 들어오는 맞벌이 부모로 인해 혼자있는 저녁시간이 무서웠다.
게임을 하면 무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시간도 잘 갔다.
게임에 빠져 성격이 난폭해지고,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은 듯 했다. 수시로 문자로 다른 아이를 위협하였고,
다른 아이 엄마의 거센 항의를 받게되는 일이 잦았다.
엄마는 다른 아이 엄마에게 빌고, 울었고, 더욱 절망에 빠졌으며,
아빠는 현실을 회피하고 매를 들었다.
마침내 6학년에 이르러는 담임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전학을 권하셨다.
6.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아들의 불안한 정서상태를 전하며,
선생님의 지도를 간곡히 부탁했다. 담임선생님은 관심을 두고 아이를 관찰했다.
가을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전문심리상담을 권하셨다.
엄마는 즉시 아동심리전문상당센타를 검색하고,
센타를방문했다. 아이가 초등학교6학년이었고, 2010년 10월 늦가을이었다.
7. 그해 겨울 눈을 맞으며,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매주 2회씩 아이와 엄마는 학동역에서 센타까지 걸었다.
아이가 상담하는 동안 엄마의 상담도 시작되었다.
8. 엄마의 상담이 두달동안 매주 진행되었고,
엄마는 처음으로 자기연민을 벗어나 현실을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과
언제나 혼자였던 어린시절의 자신의 외로운 모습이 깊은 내면에서
갑자기 떠 올라와서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불안에 웅크린 그 마음을 조금씩 알게되었다.
엄마의 어린시절 갈데없이 불안한 마음은 아이에게 그대로 옮겨가 있었고,
그 아이가 지금 엄마를 어떤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게되었다. .
어느날 엄마는 아빠에 대한 감정적인 복수감에 못이겨
그만 잘자고있던 아이를 갑자기 깨워 무섭게 비난하며 몰아쳤고
그런 엄마에게 아이는 말했다. “나도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죽고싶어. 엄마
가 집에 들어오면 무섭고..” .
그말은 엄마가 아이에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나는 죽고싶다, 라고
엄마는 수시로 아이에게 말했던 것이다. 몸짓으로, 얼굴표정으로,
냉정한 손짓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너무도 많았다.
9. 아이가 치료받는 날마다 엄마는 반드시 동행하였다.
가는 시간 오는시간 기다리는 시간 약4시간동안 단 둘만의 시간이 만들어졌고,
같이 저녁을 사먹고 전철을 타고 나란히 서서,
전철안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많은 걸 생각하고 관찰하는 아이였고,
내가 알게된 아이는 매우 적극적인 성취욕을 가진 아이였다.
10. 지난 3년간 상담한 사람은 아이보다 나 엄마자신이었다.
아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알게되고, 조금씩 관대해 졌다.
뭔가 질병이 있어 치료한것이 아니라,
내가 편히 바라보지못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아들의 객관적인 모습과 고유한 성격,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짐을 알게된다.
11. 이제 중3인 아들은 내적으로 침착해 지고,
집중능력과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는 진심으로 말한다.
[ 네가 행복하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길바란다.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어떤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
이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누군가에게 듣고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나 아이나 누구든지
혼자일수 밖에 없는, 알 수없는 인생이다. 그래도 아이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그렇게 될 것도 같다.
내가 아이를 위해,
잘한 일 중 하나. 이곳 센타에 온 것이다.